피어난 꽃 Bloom
* 하나하키 병 소재 쿨럭, 작은 기침 소리와 함께 소년의 등이 둥글게 말렸다. 간헐적인 떨림 후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소년의 발치로 하얀 꽃송이들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무언가에 놀란 듯 크게 확장되었던 소년의 동공이 이내 체념의 빛을 머금었다. 잠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던 소년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병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었다. 다만 첫 발병자는 어느 나이든 노인이었다고 추정된다. 외롭게 살다가 숨을 거둔 노인의 주검 주위에는 누가 흩뿌리고 간 마냥 꽃송이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고, 바람을 타고 그 씨앗들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의학계에서는 상당히 비과학적인 이 병을 대중들로부터 은폐시키려고 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잡다한 소문이 떠도는 것까지 막을 수..
아름답고 빛나는: 오이카와가 알바하는 곳에 찾아간 이와이즈미 “어서 오세요-.” 너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 울린다. 살짝 접힌 눈꼬리, 흰 이를 드러내며 너는 웃는다. 손님이 주문을 하고 돌아서면 너는 다음 주문을 받는다. 다음 손님이 없을 때면 너는 주방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카운터 뒤에 서 있다. 핸드폰을 바라보기도 하고, 커피 기계를 닦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주방에서 트레이가 나오면 너는 주문 번호를 확인하고 진동벨을 울린다. 손님이 픽업대로 오는 동안 너는 픽업대로 트레이를 옮기고, 마지막으로 이상은 없는지 확인한다. 손님이 오면 너는 트레이를 내밀며 말한다. “다 드신 쟁반은 이쪽으로 가져와주세요.” 손님이 누구건, 노인이건 아이건, 남자건 여자건 너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사실 미소가 너의..
Camouflage w. BBAM 그 계절, 우리는 한창 예민했다. 나는 수험 생활의 절정인 고등학교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고, 그 사람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의 졸업’은 비단 그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졸업이라는 이름의 이별이었다. 여, 보쿠토. 대학 가서도 잘 지내라! 그 사람의 등을 두드리며 건네지는 말들. 대학 가서 울면서 우리 찾지 말고. 그 사람은 한결 같은 유쾌함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헤이 헤이 헤이! 내가 누구야! 보쿠토 코타로님이시라고-. 나는 그 모든 풍경을 가만히 선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후쿠로다니 학원을 졸업하는 3학년은 한 둘이 아니었고, 졸업하는 당사자, 당사자의 가족들, 축하해주는 친구들과 후배들로 운동장 온 구석구석까지 시끌벅적..
어느 여름날 w. 뺌(@herbbbam) 때는 인터하이가 얼마 남지 않은 7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매년 그래왔듯이, 올해도 아오바죠사이의 배구부는 합숙을 진행하게 되었다. 주전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배구부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참여하는, 나름 큰 합숙이었다. 커다란 고속버스를 빌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합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합숙이 처음인 1학년들을 제외한 2, 3학년들은 합숙이 빡센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창 학교에 묶여 사는 청춘들에게는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신이 나는 일이었다. 두어 시간이 걸려 이동한 합숙소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린 배구 부원들은 방 배정을 받았다. 방 배정은 여느 때처럼 학년 별로 나뉘어 1학년, 2..
무더위 w. 뺌(@herbbbam) 한 줄기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오이카와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할 수 없었다. 이미 입고 있던 반팔 티가 축축해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남는 손이 없기 때문이었다. 직경이 제 몸통보다도 큰 대야를 들쳐 업고 언덕길을 오르는 뒷모습이 위태로웠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아무도 없는 언덕길 위에서 오이카와가 발칵 성을 내었다. 그래봤자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오이카와 토오루는 혼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아직 스물을 갓 넘겼을 뿐이었지만, 멀리 있는 대학을 다니다보니 당연하게 자취를 결정하게 되었다. 자취를 하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도통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게 된 것이었다,..